2021. 7. 23. 16:13ㆍ노스탤지아
1998년 2월의 어느 날 저녁, 루드 굴리트는 티비를 켜 텔레텍스트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그 순간, 굴리트는 커다란 충격에 빠지고 만다. 선수 겸 감독으로 첼시에서 몸 담으며 팀에 26년 만에 첫 메이저 트로피를 가져다준 그가 자신도 모르는 채 경질을 당한 것이다.
굴리트는 사전에 감독 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경고조차 한 차례 받지 않았으며,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까진 무슨 이유로 경질되는지 알지도 못했다. 그러나 애속하게도 몇 시간 후, 그의 후임자가 발표되었다. 바로 루드의 제자 중 하나였던 잔루카 비알리였다.
굴리트에겐 카이사르가 브루투스에게 당했던 것처럼 등 뒤에서 칼이 꽂힌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첼시에겐 궁극적으로 가치 있는 결정이었음이 분명하다. 성공적인 시대의 또 다른 전환점을 우아하고 반짝이는 두상을 가진 덩치 큰 이탈리아 공격수 겸 감독이 가져왔기 때문이다.
비알리는 1996년 여름 자유계약 신분으로 첼시에 입단하였다. 그를 데려온 것은 블루즈에게 있어 꽤나 큰 영입이었다. 비알리는 유벤투스의 주장으로 이적 수주 전 유로피안 컵을 들어 올렸다. 방이 무려 60개나 있는 크나 큰 성에서 자란 축구하는 귀족, 비알리는 축구계에서 그런 존재였다.(역주: 비알리는 삼프도리아에서 유벤투스로 이적할 때 세계 최고액 이적료를 기록했으며, 실제로 어릴 때 방 60개 있는 성에서 생활했다.)
그런 비알리가 지금 첼시의 명성에 발끝도 못 미치는 20세기 후반 블루즈의 홈구장 스탬포드 브릿지에 도착했다. 당시 첼시는 외국인 선수를 대거 영입하며 리그의 용병 선수 혁명에 동참하고 있었다.
당시 첼시의 감독으로 비알리를 영입한 루드 굴리트가 막 플레잉 매니저로 선임되었으며, 팀 명단은 댄 페트스쿠, 잔프랑코 졸라, 디 마테오, 프랑크 르뵈프 등 훌륭한 외국인 선수들로 가득했다. 피시 앤 그레이비 같은 영국적인 축구 대신 프로세코 와인 같이 대륙적인 축구가 블루즈에 자리 잡은 것이다.
96-97 시즌, 첼시는 FA컵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블루즈는 경기 시작 1분 만에 터진 디 마테오의 환상적인 중거리 골에 힘입어 주니뉴 파울리스타와 라바넬리가 버티고 있던 미들즈브러를 상대로 2대 0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비알리에게 있어서, 96-97 시즌은 썩 좋지 않은 시간이었다.
물론 그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훌륭한 결승골을 넣었으며, FA 컵 3라운드 리버풀전에서 두 골을 집어넣기도 하였다. 첼시 팬들은 비알리가 활약할 때마다 'That's amore' 노래에 맞춰 열띤 응원을 보냈지만 그는 시즌의 대부분 시간 동안 굴리트와 심한 불화를 겪고 있었으며, 마크 휴즈스와 졸라에 밀려 벤치를 데우고 있을 때가 많았다.
다음 시즌, 상황은 뜻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비알리는 굴리트에게 몸상태가 좋다는 에두른 칭찬을 들은 후 반즐리전에서 무려 4골을 기록했다. 또한 그는 컵 위너스컵에서 트롬보를 상대로 원정 두 골, 홈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총합 9대 3 승리의 일등공신이 되기도 하였다.
https://twitter.com/i/status/968754904855732224
그러나 굴리트와 비알리의 관계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훗날 비알리는 <Blue Day>라는 책에서 "물론 96-97 시즌보단 많은 출장시간을 부여받고 있었으나, 전혀 이해 안 되는 로테이션 시스템에 크게 실망했다. 당시 난 내 친구 아틸리오 롬바르도가 활약하고 있던 크리스탈 팰리스나 셀틱 혹은 글래스고 레인저스로 이적할까 고민하기도 했다."라고 밝혔다.
비알리는 좀 더 참고 견디기로 결정했고, 상황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굴리트의 계약은 시즌 말에 만료될 예정이었지만 재계약 협상은 진전이 없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첼시는 새로운 감독을 찾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들은 비알리에게 감독직을 제시하였다. "정말 재밌는 제안이었죠." 비알리가 훗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당연히 흥미롭고 구미 당기는 제안이었을 것이다. 굴리트와 첼시의 동행을 본인 손으로 끝낼 기회였으니까.
며칠 후 첼시가 리그 2위를 달리고 있고 컵 위너스 컵 4강에 진출한 시점, 첼시의 감독은 더 이상 굴리트가 아니었다. 피 튀기는 집안싸움이었지만 결국 비알리가 승리를 쟁취해냈고, 향후 2년 간 그는 블루즈의 현대사에 한 획을 긋게 된다.
비알리는 단 한 게임만으로 자신이 앞으로 보여줄 축구가 무엇인지 증명해낸다. 리그컵 4강전 1차전, 첼시는 아스날에게 2대 1 석패를 당한다. 블루즈는 2차전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떨어질 것이다.
비알리의 대처는 정말 비알리다웠다. 경기 전 드레싱룸에서 그는 샴페인을 따 선수들에게 나눠주어 팀의 사기를 드높였다. 그는 휴즈스, 졸라와 함께 쓰리톱의 일원으로 출전했으며, 블루즈는 전반전에만 세 골을 몰아넣는다. 비알리가 경기 종료 10분을 남기고 교체될 때, 관중들은 뜨거운 함성과 기립박수를 그에게 보냈다.
이후 수주 간, 첼시는 리그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비알리의 목표는 정규리그가 아니라 컵이었다. 블루즈는 컵 위너스컵 8강전에서 레알 베티스를 총합 5대 2로 잡아내며 성공적으로 4강에 안착한다.(참고로 비알리는 두 경기 모두 출장하지 않았다.)
비알리는 리그 컵 결승전에서도 사이드라인에서만 모습을 보였다. 그는 플레잉 매니저의 역할에서 자신의 출장보다 팀을 우선시했으며, 디 마테오의 골에 힘입어 2대 1로 승리하며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또한 첼시는 그 해 5월 스톡홀름에서 졸라의 득점포를 앞세워 컵 위너스컵 트로피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다음 시즌은 선수 비알리의 마지막 해였다. 비알리의 지휘 아래, 블루즈는 슈퍼컵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격파하며 시즌이 시작하자마자 런던으로 또 다른 트로피를 하나 가져왔다. 이후 첼시는 졸라의 마법 같은 퍼포먼스를 바탕으로 리그 우승 경쟁에 참전했고, 결국 3위를 차지하며 창단 이래 첫 챔피언스리그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이 시즌 블루즈는 유럽 대항전에서도 꽤 훌륭한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8강까지 진출했으며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바르샤를 상대로 3대 1 승리를 거두었다.(물론 캄프누에서 1대 5로 패했지만 말이다.) 5월, 비알리는 또 한 번 디 마테오의 골 덕에 FA컵 우승을 다시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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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충격적이게도(어쩌면 굴리트 때보다도 더), 비알리는 그다음 시즌 리그 5 경기만에 경질당하고 만다. 블루즈는 리그에서 부진한 출발을 했지만 채리티 실드를 따냈으며, 비알리는 당시 첼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감독이었다. 그는 팬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며 그의 이름은 그가 떠난 후에도 수달 간 런던 곳곳의 뒷마당에서 불려졌다.
2019년, 비알리는 한 인터뷰에서 과거를 회상했다. "당시 훈련장을 떠나 보드진을 만나러 갔죠. 제가 도착했을 때 그들은 저에게 앉으라고 하더군요. 전 속으로 얼마나 부를까 생각했죠. 백만 파운드? 아니면 이백만 파운드?"
"근데 보드진은 제가 생각하던 것과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콜린 허친슨은 '당신이 3년 전에 이렇게 말했죠. 3년 후엔 선수진을 싹다갈아엎거나, 감독을 바꿔야할거라고요. 그리고 우리는 당신을 자르기로 결정했습니다.'라고 저에게 단호히 얘기했죠."
비알리는 경질 이후 지금까지도 서런던에서 계속 생활하고 있으며, 오늘날까지 훌륭한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그의 첼시 시절은 혁신의 시대였고 비알리는 그 변화를 구체화한 사람이었다. 그는 품격 있는 스타일, 사교성, 영어를 쓰려고 노력하는 시도 등 덕에 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그렇기에 2017년, 비알리가 췌장암에 걸렸을 때 블루즈 팬들이 그의 회복을 따뜻하게 응원하는 모습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과연 비알리가 없었더라면 블루즈가 지금과 같은 위상을 가질 수 있었을까? 21세기에 접어들어 첼시는 막대한 자본을 등에 업고 유럽의 슈퍼클럽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비알리가 스탬포드 브릿지에 가져다 준 마법같은 시간들이 없었어도 로만이 첼시를 인수했을까?
물론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질문이고, 로만으로부터 답을 들을 일도 없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잔루카 비알리의 업적이 절대 과소평가되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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